이 글에 대한 제의를 받고 “사업가 이종기, 인간 이종기”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제일 강하게 떠오르는 것은 이종기의 엉뚱함이 내 머리를 붙잡았다. 나에게 있어 이종기는 사업가라기 보다는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다. 이종기라는 사람은 남들이 상상하지 않은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놓고 꾸준히 꿈을 키워가며, 그것을 실체화하기 위해 보통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없는 추진력을 발휘하곤 한다.

그는 때로는 성공 그 자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품고 있기도 하고, 만나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그 것이 그의 발목을 잡는 경우도 허다하나, 그럼에도 사람을 쉽게 믿는 그는 천성이 인간이다.

그는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 때에도 밥값을 먼저 지불해야 맘이 편한 사람이고, 주변에 힘든 사정을 들으면 나서서 돕겠다고 큰 소리를 치는 것을 보면 그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아는 이종기는 도심의 고급 호텔보다는 저개발 국가의 허름한 도시에 있을 때 훨씬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본 가장 성공 지향적인 사람이면서도, 저개발 국가의 신발없는 아이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었고, 학교에 못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화를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종기를 처음 만난 것은 동티모르가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수도 딜리에서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현지에서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는지,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할만큼 적극적이었고, 생활수준이 낮은 그곳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 당시 이종기가 나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은 “야… 야… 저것을 좀 어떻게 사업화하면 여기 사람들이 밥은 제 때 먹을 수 있지 않을것 같지 않냐?” 였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네 밥이나 잘 챙겨!”였지만 그런 모습이 이종기를 친구라는 이름으로 존경할 수 있는 이유였던 것 같다.

그는 나와는 성격이 참 안맞는 사람이다. 안맞아도 너무 안맞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이런 성공에 대한 욕심 뒤에 자리잡고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종기는 허황된 사람이다. 남들이 들으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만큼 그는 꿈이 크다. 그는 큰 성공을 꿈꾸며, 그에 맞는 보상도 크게 꿈꾸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사람 욕심이 많다. 항상 사람 자랑을 많이 한다. 남들에게도 내 자랑을 저렇게 하려나…. 아님 그 자랑 리스트엔 나는 빠져 있으려나… 궁금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 큰 그림의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상상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설계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남들이 꾸지 않는 꿈을 꾸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이다.
내가 이종기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 이회장은 하는 사업이 평탄치 않았을 때였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고 난 후라 사람을 만나고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지만, 아끼는 지인이 소개를 한 터라 우리의 첫 만남은 특별히 어색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재향군인회의 향군장학회를 맡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친해질 수 있었는데, 그건 아마 이종기회장의 적극성과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이회장의 성품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당시 이종기회장은 사업이 원활하지 않고, 많이 어려웠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오면 꼭 한번씩 나를 찾곤 했다. 그런것을 보면 이회장은 만남을 귀히 여기고,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업가임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이 돈과 성공을 따라가는 것이 상식인 세상에서 사람을 따라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나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래서 이회장을 좋아한다.
그가 하는 일에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 싶어 몇번이고 물었지만, 아직도 그 입에서 뭔가를 도와 달라는 말이 나온 적이 없다.

그런 그가 다시 비상을 하려하니 반갑기만 하다.
사람을 귀히 여기기에, 많은 좋은 사람을 결실로 맺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전 공군참모총장 박춘택
홍콩에서 처음 본 이종기는 외소한 체격에 똘망똘망한 눈망을 가진 아주 순수함 그 자체였다.
선하게 웃는 모습은 참으로 품성이 좋아 보였다.
누구나 첫 인상이라는 것이 참 중요한데 이종기와의 첫 대면은 그렇게 기분좋은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도 이종기의 그 첫인상에서 풍기는 선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제작년인가 내가 홍콩에서 큰 행사가 있었는데 부족한 인력으로 준비 하다보니 여기저기서 누수가 나기도 했었는데 그때 이종기가 도와 주겠다며 그 일을 도와 준 적이 있었다.
거기서 놀라운 이종기의 새로운 면을 보게되었다.
생각지도 않은 가장 기본적인 오는 손님들의 명찰과 필기도구를 직접 만들어 챙겨오고 호텔 행사장을 점검하며 담당장에게 꼼꼼하게 체크를 하는 모습에 강동을 하였다.
특히 호텔로비에 안내 거치대를 세우고 본인이 직접 적어 온 한글 안내판을 붙히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 중견기업을 운영했던 회장의 직함을 가진 사람이 일개 직원들이 해야 할 법한 일들부터 최고 오너가 해야 할 일들까지 막힘없이 처리 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대단한 친구라는 걸 느꼈다.

다소 어려움을 겪고있는 일도 있겠지만 내가 본 이종기는 분명 큰일을 벌일 사람이고 그 일 또한 물 흐르듯 해 낼수 있음을 보았다.

작은 거인의 피치로 분명 그리 되리라고 확신한다.
1. 아빠와 함께 쓴 초등학생 동시 “따오기의 노래”
아빠 이종기의 “아들 사랑하는 마음”과 아들의 “아빠 생각의 눈”으로 보는 일상의 일들이 마치 한장의 그림을 보듯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빠의 “마음의 눈”으로 본 아들이 성장하는 모습이 손에 잡힐듯 그려집니다. 더불어 세상을 보는 아들의 눈이 어떻게 성장해 가고 있나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모의 Next Generation Oriented Mind를 더해서.

? 어린시절 누구나에게 있었을 법한 또는 거쳐온 애틋한 지난시절들을 떠올리게 해주어서 더욱 “공감의 영역”을 넓혀준 것 같습니다.

? 이곳저곳에서 한가족으로서의 아빠, 엄마, 아들이?추억을 만들어 가는 정경이 어떤 이상적인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마치 한장의 사진을 보듯이..
그리고 말없이 눈으로 말하는 이심전심의 경지를 느끼게 합니다.

? 참고:
1) 시집에 시 제목 목차를 넣으시면 좋겠습니다.
2) 시를 분야 또는 내용별로 분류하여 중간 제목을 넣으시면 좋겠습니다.

? 보내온 또다른 시집 내용을 다룬 내 느낌을?추가로 보냅니다.

? 3. 우선 먼저 보내드린것 처럼 이번 것도 1)의 시 목차를 넣고 주제별 또는 연대별 등으로 선별하여 중간 제목을 넣는?분류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겠어요.??어떤 시는 제목이 같은 것도 있거든요.
그런 저자의 수고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2) 시의 문장이 끝나는 문장에 마침표를 넣는 것은 어떨까요. 마침표는 생각의 흐름 또는 어떤 한가지 아이디어의 완결을 주니까요. 또 잠시의 생각할 휴식을 주기도 하고.

? 3) 어떤 용어나 단어에는 각주를 달어서 독자의 이해를 도울 필요가 있을 겁니다.

? 저자 이종기는 지난 30년간 세계를 다니며 느낀 일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어릴적 고향의 모습과 주변 단상들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고국을 떠난 이후 셰계 곳곳을 다니며 느낀 감정도 다양한 종류의 ?”그리움”으로 묶어서 나타내고 있다.
그는 아마도 “어쩌다 고국같은 선한 모퉁일 돌때마다 느껴온 가슴속 깊이 흐르는 여울소리”를 차마 감추지 못하고?시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떨어진 가족, 옛 사랑의 애틋함, 시골 고향의 농촌생활속에 어린 추억 속의 기억 등을 주로 주제로 선정해 왔다.
저자 이종기는?시(詩) 안에서 자신을 “아직 철안든 동화 속의 금단왕국의 왕자”를 꿈꾸며 살고 싶은가 보다.
그가 표현하는 시 속에 나타난 사랑은 아마도?”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를 추구하고 있다.

? 또한 이종기는 존엄하고 반듯한 모든 위엄을 잠시 내려 놓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숨김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자유로이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한결 쉽고 흥미롭게 시의 표현을 볼 수 있게 해준다.?

? 그의 시는 현란한 수식도 난해한 상징도 없다. 평범하고 쉬운 시어가 간결한 시행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좀더 때묻지 않은 소박함과 순수한 여백 안에 인간이 담기고 우주가 비춘다고 생각된다.
평범한 독백이지만 마음을 흔드는 서정시이다. 그리고 단아와 단아 사이를 행과 행 사이를 옮길 때는 부드러운 멈춤과 긴 호흡이 요구된다.

? 그의 시는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개인적인 인간의한계와 불완전성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관조적인 태도를 추구하는 ?개성적인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종기는 나의 친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부터 줄곤 6년 간을 같은반 동무로 지낸 특별난 친구이다.
여러 친구들중에서 쉰둘 인생을 살아오기까지 나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 친구로 지내온 친구도 드물지 싶다.

용인에서 자란 탓에 함께 공유한 추억도 많다.
특히 꿈 많던 청소년 시절엔 함께 아르바이트도 했고 군대가기전 까지도 서로의 부모형제도 가까이 찾았을 만큼 내왕도 많았다.

그동안 오랜 시간 지켜 본 친구 이종기는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는 참으로 끊기있고 한번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집념의 사람이다.

사업도 수없이 흥하고 실패하길 반복했다. 그래도 그 친구는 한번도 포기하는 걸 모른다.
오뚜기처럼 일어나 한결같이 다시 재기를 위해 일어선다.
아마도 그 친구저럼 집념이 강한 사람은 일찍이 보질 못했다.
그런 그 친구가 다시 세상에 중심에 서서 글로벌 사업을 펼친다고 할때 무한한 지지와 성원을 보낸다.

이종기라면 이번엔 뭔가 반드시 해내지 않을까 싶다.
인간 오뚜기 이종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시대의 영원한 청춘이오, 이단아라고 본다. 자신의 꿈을 위해 포기할 줄 모르는 열정과 집념이 오늘의 이종기라고 본다.
그런 이종기를 친구로 둔 나는 가끔 그를 통해 나 자신의 삶을 챙기게 한다.
오랜 친구로서 인간 오뚜기 이종기의 무한도전에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반드시 승리할것이라고!

김강륜 위웨펠그룹 대표이사
내가 파릇파릇한 청년 이종기를 처음 만난 것은 86년, 그러니까 그때가 한국에서 아시안 게임을 할 때였다. 때에 맞아 부산에서도 국제학술세미나가 있어서 한국을 방문했고, 그때 청년 이종기가 자원봉사자로 나와서 부산까지 나와 동행하며 현지 에스코트를 했었다.

내가 만난 이종기는 청년의 열정이 있었고, 정의로왔고,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많은 한국 청년들처럼 그도 일본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많은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그 문제를 놓고,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반일 감정에 파뭍혀 있지 말고 그것을 뛰어 넘으라는 말뿐이었다.
그 과거의 망령을 뛰어 넘기 위해 일본 유학을 권유하면서, 그건 분명 존재했던 역사였고, 그것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우리의 힘이 닿지 않는 정치적인 부분이었기에 선배로써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초라하게도 그것뿐이었는데, 내 말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참 긴 시간의 관계를 이어온 것 같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서신을 주고받고, 선물도 주고받고, 서로를 초청해서 같이 지내며 삶을 나누기도 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청년 이종기는 남을 기쁘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작은 것을 베풀면 너무도 감동하여 주는 사람을 몇배 기쁘게 만들었다. 결국 더 큰 것을 주게 만드는…
당시 아무 생각없이 그에게 선물한 신형 샤프연필(칼라 샤프심)을 그는 오래 동안 기억하고 있었고, 일본 방문 시에 도쿄대학 이학부 연구실 소개, 국회 방문과 내가 아는 몇몇 의원들을 소개할 때에도 그는 너무도 감동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기뻐했고, 그것이 나에게도 기쁨이 되었던 추억이 있다.

그는 뭔가를 주면 사양하는 법을 모른다. 어정쩡한 표정을 할 줄도 모른다. 그는 뭔가를 받으면 항상 크게 감사할 줄 알고, 항상 감동스런 표정을 한다.
언젠가는 그가 일본에 오면서 한국에서 한약을 준비해 와서 내집에서 밤새도록 다려내더니 날 마시라고 해서 혼자 마시기 아까워 도쿄대 동물학과 교수들과 한달 내내 같이 보신을 한 기억이 있다. 근데 왠지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기쁘게 받게 되는 것은 무슨 현상인지. 이것도 전염이 되나보다.
이종기는 남이 도움을 줄 때 사양하지 않고, 너무도 감사하게 받는다. 베푼 사람이 기쁠 정도로.
또한 이종기는 남에게 베풀 때, 주는 사람의 기쁨이 느껴지게 베푼다.
그는 감사히 받을 줄 알고, 기쁘게 줄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청년 이종기가 어느날 사업가가 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는 그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이제는 반백발의 중년이 된 그가 아직도 청년의 마음으로 뛰는 것을 보면 참으로 반갑고 기쁘다.

청년 이종기의 도약에 다시 한번 기대를 하며 응원을 보낸다.

일본 도쿄대학교 동물학교실 교수 나르세 기요시
인간 이종기…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부모와 자식의 유전적 만남, 우정의 이름으로 연결되는 친구와의 만남, 사랑으로 연결되는 연인과의 만남 등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만남은 없다.

외부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항상 기회를 추구하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혁신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해 시장에 새로운?가치를 창조하는 모험과 도전 정신을 가진 사업가, 이종기회장과의 만남은 10여 년 전, 태국 탁신 정부가 추진한 국민주택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였다.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 그의 카리스마에 반해 우정의 이름으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내가 기회의 나라, 캄보디아로 진출하면서 우리의 만남은 중단되었다.

2016년 페이스 북에 반가운 친구 신청 요청이 하나 들어 왔다. 이종기회장이었다. 정보화 시대의 총아, 페이스 북에서 추천하는 친구 목록에서 나를 발견하고 친구 신청을 한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잡혀 있던 아랍에미리트 출장 일정을 뒤로 하고 친구를 찾아온 그와 마침내 캄보디아에서 해후했다. 친구와의 만남을 위해 중요한 비즈니스 일정을 뒤로 하고 한 걸음에 달려온 사람, 친구와의 우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리의 사나이가 바로 이종기 회장이다.

세계를 주름잡기 위해 살아온 그의 열정은 캄보디아 입국 비자를 받을 공간이 없는 그의 여권이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심오하게 사고(思考)하고, 정확하게 판단(判斷)하는 능력에다 과감하게 실천(實踐)하는 용기를 갖춘 친구, 이종기회장은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햇병아리 사업가인 나에게 사업가로서 가져야 할 비전과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 주었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경제전문가, 이종기 회장, 이젠 그가 우정을 넘어 나의 사업 멘토(Mentor)가 되었다. 그가 있어 든든하다. 그가 있어 행복하다.

공자(孔子)께서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不亦樂乎)라고 했다. 친구가 먼 곳에서 한걸음에 달려와 주니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자께서 말씀하신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친구, 이종기회장이 내 친구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그런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한국테러리쥼연구소장
현 캄보디아HK홀딩스 대표
최진태 박사(국제정치학)
이종기 회장을 만난 것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긴 시간일 수도 있고, 짦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내게 남긴 흔적은 결코 작지 않다.

이종기 회장을 처음 봤을 때, 동티모르는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희망을 갖는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할 정도로 우울한 현실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짓눌렀을 때였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 한끼로 감사해야 했고, 100만명도 안되는 전체 인구중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유엔 난민촌 생활을 했던 때였다. 살아있다는 것은 그저 의학적으로 생명이 붙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때에, 이회장은 아이들을 생각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료받아야 하며, 교육 받아야 하며,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니… 누군 그걸 모르나?
잘 알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이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희한한 것은 이종기회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걸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현실을 뛰어 넘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왠지 현실을 극복할 의지가 생기고, 역경 뒤에 있을 뭔가를 곧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티모르는 아직도 갈 길이 창창하다. 해야할 일도 많고,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은… ,
정말 연약한 신생독립국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많이 변해왔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종기회장에게 감사한다. 주저 앉고 싶을 때 꿈을 갖게 해 주었고, 다시 일어서게 해 준 사람…
그 사람이 예전의 나에게 그러했듯이 지금도 누군가에게 또 다시 희망을 전하고 있기를 축복한다.

동티모르 경찰청 국장 페드로
내가 이종기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내 나라 동티모르였다.
지금도 척박한 곳이지만 그 당시의 동티모르는 반복되는 내전과 독립투쟁 등을 겪으면서 피폐한 상황이었다. 그런 땅에 낮선 외국인이 찾아온다는 것은 참 드문일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이라면 모를까 사업가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 척박한 시절에 만난 이종기 회장은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 시절 내나라의 곳곳을 다니면서도 식수마저 넉넉치 못한 곳에서 그는 전혀 불편함 없는 듯 사람들을 대했고, 특히나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할 때 마음 아파했던 사람이다. 그의 그 마음은 남들에게서 보는 여타의 동정심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서 나는 이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때 독립운동을 위해 총을 들기도 했고, 정치에 입문하기도 했던 나로써는 그의 그런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후에 기회가 되어 이종기회장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제 겨우 독립한 가난한 변방 국가의 공직자일 뿐인데 기죽지 않게 하려는 배려인지 지극한 대우를 받았다. 그는 사람의 속을 만질 줄 아는 배려깊은 사람이다. 대한민국 경찰총장도 만나게 해주고, 경제계의 많은 인사들도 소개를 받고 우리 나라의 현실에 대해서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그가 직접 나서서 동티모르의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해 뛰어 다니는 것을 보면서 그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대통령 직에 출마하여 낙선을 했을 때에도 그는 잊지않고, 내게 위로를 보냈으며, 내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때도 병원까지 찾아와 나의 병원비랑 활동비까지 적잖이 주고 간 그는 아직도 동티모르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내가 지쳐 낙심할 때마저도 그는 나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는 사람이었다.
동티모르의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많은 아이디어를 토해내는 것을 보면서 그는 천상 사업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열정이 있는 원숙한 청년이었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배고프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고민하는 그는 세상 많은 아이들의 참 따뜻한 아버지임에 분명하다.
내가 아는 이종기회장,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동티모르 기독교민주당 총재 안토니오 시메네스 다코스타
지금은 내가 목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내가 이종기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교사와 학생의 자리에서였다.
그당시 나는 수원농고의 국사교사로 재직하고 있었고, 이종기는 새로운 환경에 낮설어 두리번 거리는 고교 신입생이었다.

이종기에 대한 첫인상은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저 수도권의 언저리에서 태어나 거기서 학교를 다니는 평범한 학생정도..

그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특별활동 시간이었다.
지금에야 찾아보기 힘든 웅변… 그 당시에는 발표력 강화니 뭐니 해서 웅변학원도 많이 있고 했던 시절에, 내가 맡은 웅변반에 이종기가 들어왔다. 장래 희망이 국회의원이기때문에 연설하는 법을 배우겠다고 말이다.
이종기가 웅변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특별한 재능은 웅변이 아니고 적극성이었다.
요즘 아이들이야 구김없게 키워서 다들 자신감이 있다고 하지만, 그 당시만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심감도 없고, 숫기도 없었다. 그래서 부모들이 웅변을 시키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이종기는 좀 달랐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다. 남들 망설일 때 이종기는 손을 드는 것이 아니고, 벌써 무대로 나가고 있다. 일단 들이대고 뒷감당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사람 같았다.
사람은 꿈꾼대로 된다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종기는 그후 그 성격대로 각종 웅변대회에 나가 상을 쓸어 오다시피 했다. 선생인 나도 졸지에 재능 없이 노력과 적극성만으로도 저런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증거를 내눈으로 확인하는 경험을 했다.

그런 이종기가 사업가가 되어 30년만에 연락을 해 왔으니, 그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벌써 50을 넘긴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성격은 여전하다. 내가 아는 이종기는 생각은 짦게, 실천은 빨리, 부족한 생각은 달리면서 하자는 사람이다.
저마다 성격이 다르지만, 그 성격이 어떤 결과를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30여년 전에 그런 성격으로 좋은 결실을 맺은 것을 봤기에, 나는 이종기의 성공에 한표를 던진다.
그의 적극성과 진취적 성향에 찬사를 보내며 내가 그의 인생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음에 감사하고 뿌듯함을 느낀다.

그런 옛시절에 제자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받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영통영락교회 담임 목사 고흥식
내가 처음 만난 이종기 회장은 벤처 기업인이었다.
이름과 직위만 벤처 기업인이 아니고, 하는 행동이나 생각하는 것도 벤처 기업인이었다. 나에게 있어 벤처는 작은 규모, 무규칙, 가난한 사업가, 밤샘 작업 등의 그런 것이 아니고 열정, 젊음, 상상력, 관습탈피, 순수함 등으로 정의 내려졌는데, 이종기가 딱 그랬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그가 하는 사업의 범위와 영역이 커질 때에도 그는 같은 모습을 보였고, 만나는 사람의 지위가 달라져도 그는 여전히 벤처 정신에 빠져 있는 사람이었다.

나에게 있어 이종기 회장에 대한 첫번째 기억은 고집이다. 그는 타협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없었다. 하나의 일을 놓고, 여러 의견을 듣지만 결론은 자기 맘대로다. 그리고 밀어붙이는 것은 정말 정신없다. 내가 옳음데 왜 조율을 하느냐는 식의 그 고집을 보면서, 저 고집이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염려도 되지만, 지금까지 잘 가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가 있기는 한가보다.
세상은 이런 것을 카리스마라고 한다. 그러나 카리스마의 원뜻에는 “신에게서 받은 뛰어나 능력”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이 뜻 역시 이종기회장에게 그런대로 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다.

내가 아는 이종기 회장의 또 다른 기억은 역사의식이 강했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일본 식민지를 겪으면서 왜곡되고 축소되고 보잘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진 우리 역사를 이야기 할 때 흥분하는 것을 보면, 저 나이에 아직 대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 뿐 아니라, 요즘 대학생은 저런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종기회장은 우리의 역사 뿐 아니라 남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어느 나라를 방문하던지 그 나라 역사를 조금이라도 읽어보고 가곤 했다. 그 역사안에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정서가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 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곳의 사람들을 존중하고 귀하게 대하는 그의 인성은 아마도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실제 베트남에서 “미국과 프랑스를 맨손을 몰아 낸 유일한 국가”라고 칭찬 했을 때, 베트남 사람들의 자랑스러워 하는 얼굴을 기억한다. 그는 그 한마디로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했었다. 그는 저돌적이지만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분명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다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하니, 왠지 내가 설레인다.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주변을 놀래킬지.

“이는 자가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신약성경 누가복음 5장 9절에 나온 말씀이다.

이종기 회장의 새로운 꿈에 이런 일이 있기를 기원한다.

재단법인 한국통일진흥원 교수 이무영
내가 아는 이종기 사장은 무척 부지런하고 수완이 뛰어난 재주꾼 사업가이다. 그렇게 세계 각국을 쉴새없이 누비고 다니는 이런 사업가를 나는 거의 본적이 없다. 때로는 아침 식사는 홍콩에서 하고 점심 약속은 쿠알라룸푸르에서 그리고 저녁 미팅은 방콕에서 하는걸 알기 때문이다. 이종기 사장의 사업에 대한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을 시작하면 끝을 봐야만하는 집요한 열정 때문에 아마도 자기만의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없을것 같아 간혹 연민의 정을 느끼곤 한다.

내가 이종기 사장을 처음 만난건 내가 관직을 은퇴한 직후 이사장이 태국 주택청의 60만 서민주택 건설 공사에 참여 하고자 방콕에 방문했을때였다. 항상 대화에 거침이 없었고 자신감이 넘치는 언변이 인상적이었으며 매사를 주도 면밀하게 계획하고 철저하게 실행에 옮기는걸 보면서 대성할 자질을 갖춘 사업가 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당시 주택청 부청장 쿤 빠뎃이 이종기 사장의 추진력을 높게 평가했던 기억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탁신 정권의 몰락으로 기대했던 서민주택 건설사업이 중단되어서 타격을 입어 안타깝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후 2010년 경 이종기 사장이 포스코 건설에서 동남아 3국( 태국, 미얀마, 라오스)에 대한 독점 에이전트 지명서를 받아 가지고 찾아 왔다. 이종기 사장이 다방면에 인맥이 좋다는걸 알았지만 포스코건설로 부터 동남아 3국의 독점 에이전트를 획득한 그의 수완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 당시 라오스 정부에서 활발히 추진 중 이었던 대형 수력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를 포스코건설에서 인수 또는 신규 참여 하려는 계획이어서 나는 이종기 사장 일행(포스코건설 수석 부사장 외 2 인)을 안내하여 라오스 비엔티엔 수상관저를 찾아가 이종기 사장에게 내가 평소에 친분이 있던 경제담당 부수상 및 경제 기획원 장관, 투자청 장관 등을 두루 소개시켜 주었는데 이사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뛰어난 언변과 발군의 협상 솜씨를 발휘하여 담당 장관들을 설득시켜 그들이 최대로 협력하겠다는 언질을 받아내는걸 보고 비범한 협상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신기한 일은 이종기 사장의 영어 구사 능력이 그리 뛰어 나지도 않은거 같은데도 때로는 통역을 사용하면서 상대방을 매끄럽게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을 못할것이다. 집무중인 그 바쁜 라오스 장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끝까지 경청한후 지원을 약속했으니까 말이다.

이종기 사장은 그 외에도 태국 내의 건설사업 관련하여, 건설장관 “쿤 차찯”, 국회 교통 분과위원장 겸 창라이 국회의원 “쿤 이티뎃” 등을 장관실과 국회로 각각 방문하여 도시 순환 고속도로 및 태국 북부 철로 연장 공사 등을 심도있게 협의 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군부의 쿠테타로 정권이 무너져 백지화 되었다. 그 일로 인하여 무척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는데, 여하튼 이종기 사장은 포기를 모르는 오뚜기 같은 인물이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불가사의한 수완가이며 협상가이고 창조적인 사업가이기 때문에 나는 이종기 사장이 대성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태국 전 수산청장관 닥터 탐마론
새 천년인 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15년이 지나갑니다.
빛처럼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한국인들의 활약상은 가히 존경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세계는 지금 한류 2.0시대를 시작으로 열풍에 휩싸여 있고 세계인들은 한국의 문화, 역사, K-POP, 드라마, 음식은 물론 한국어 등 여러 분야에서 광풍처럼 따라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발맞춰 한류 원조 기업인이라고도 할 수도 있는 KNT그룹의 이종기 대표는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답게 아시아 곳곳에서 코리아타운을 건설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하니 오래전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수학을 같이 한 동문으로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종기 대표는 벤처기업인으로서 밤낮으로 연구와 개발에 몰두하며 한시도 쉴 틈이 없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면서 어느새 그의 여섯 번째 저서인 ‘언론이 본 이종기, 내가 희망의 증거이고 싶다’ 출간 소식은 여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서도 또 한 권의 저서를 세상에 선보인다고 하니 그동안의 노고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바입니다.
아무쪼록 본 저서를 통해 대한민국의 기업인들이 세계시장을 무대로 경제활동을 해 나가는데 이종기 대표의 생생한 현장 경험을 토대로 언론이 본 시각에서 취재된 400여 편의 정보는 글로벌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창업자, 기업인, 투자자, 경영자 및 임직원들에게 한국인이 나아갈 길과 비전을 제시하고 새로운 정보를 올바른 관점에서 크게 제공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끝으로 글로벌 정신으로 무장된 강한 대한민국인, 두려움과 불가능에 도전해 가며 성장가도를 힘차게 이어가고 있는 이종기 대표께서 “내게 능력 주시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4:13)”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도 이루어지시기를 축복하며 기도드립니다.

대한민국 전 군인공제회 이사장(육군 중장 예편) 조 영 호
새로운 사업을 위해서라면 오지를 마다않고 세계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자유로운 영혼. 수많은 세월동안 실패와 함께 했음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다시 도전하는 사람. 허무맹랑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상품화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 뭔가 가능성이 보이면 세상에 미칠 순기능을 생각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사람. 숱한 좌절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놓지 않는 사람. 평범한 일상의 이면을 비틀어보면서 그 속에서 색다른 요소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와 같은 모든 요소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엉뚱함’이다. 이종기는 바로 그런 ‘엉뚱한 사고력’을 가졌다. 이런 요소들은 의사, 과학자들의 사고라기보다는 만화가적 기질에 더 가깝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해내기보다는 다른 방향에서 사물을 보려 노력하고, 때론 비틀어보면서 새롭게 변화시킬 요소들을 찾곤 한다. 이런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때론 허황된 사람으로 오해를 받곤 한다. 아니, 정말로 황당무계한 측면이 너무나 많다.

한편으로는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부분도 발견할 수도 있다.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여 사소한 것들도 새로운 시각에서 보려고 노력하면서 그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려고 한다.

한동안 알파고와 이세돌이 펼친 세기의 대결이 화제가 됐었다. 어릴 적 말하는 자동차 ‘키트’나 ‘소머즈’를 보며 공상을 하고, 로봇이라고 하면 ‘태권브이’나 ‘마징가Z’가 최고였는데, 이젠 ‘월-E’와 ‘베이맥스’처럼 인공지능 친구들이 친근한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일본에는 로봇호텔이 인기라고 한다. 의료기술에도 이미 로봇의 역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아날로그 감성이 더 그리워지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나가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세계가 국가적 차원에서 인공지능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중차대한 도전으로 여겨지는 인공지능도 따지고 보면 ‘엉뚱한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이러한 상상력에 기반한 인적?기술적 네트워크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미래의 크나큰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이종기의 ‘엉뚱한 상상력’이 국가를 초월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발상전환의 단초를 제공하면서, 더 나아가 순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는 한 축을 담당하게 될 날을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돈의 가장 큰 보람은 베품과 나눔에 있다. 어려운 이웃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어 주는 사업가, 내가 아는 이종기가 그런 사업가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병준 (파이낸셜포커스 발행인)